BLOG ARTICLE 여름에 읽어 볼까 | 1 ARTICLE FOUND

  1. 2013.02.05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사용자/책 2013. 2. 5. 17:23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 10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열린책들
http://gompic.tistory.com2013-02-05T08:23:320.31010


그러고 보니 다른 외국 작가에 비해 폴 오스터의 소설을 많이 본 것 같다. 이 책 이전에는 어둠 속의 남자를 읽었고 그보다 전에는 브루클린 풍자극,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등을 읽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브루클린 풍자극이었는데 황혼 이혼으로 삶이 허망해진 늙은 남자가 겪는 모험이랄지 생활이랄지 아무튼 새 삶이 무럭무럭 자라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새로 사귀게 된 여성에게 정중하게 청혼했다가 따뜻한 거절의 말을 듣는 장면이 정말 좋았다.  

 

나는 1967년 봄에 그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당시 나는 컬럼비아 대학 2년생이었고 책만 좋아할 뿐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훌륭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려 보겠다는 믿음(혹은 망상) 하나만은 굳건했다. 나는 시를 많이 읽고 있었으므로 그와 똑같은 이름을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소설 보이지 않는의 시작은 마치 많은 작가들이 한 번씩은 쓰는 자전적 성장소설 같았다. 문학소년이 방황하는 문청 시기를 거쳐 사랑하고 헤어지고 만남에서 배우는, 그런 소설. 이미 매체를 통해 그게 아님을 정보 주입 받았는데도 문학에 대해 술술 말을 풀어나가는 1인층 화자는 그런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애덤 워커가 만난  '그'다. 루돌프 보른이란 인물인데, 그와 만나 버린 이상 애덤은 어찌할 수 없었다고나 할까? 모든 것을 기획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듯한 이 의뭉스러운 남자는 절대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애덤이 바라지 않는 순간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매혹적이고 신선하다는 것이 함정. 프랑스인인 그는 미국 젋은이들이 모인 어느 파티에서 만난 애덤을 띄우며 자신의 잉여로운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살냄새를 풍기는 아름다운 마고가 있었다. 결국 애덤은 보른이 투자 얘기를 꺼내고 잠시 프랑스에 간 사이, 마고와 섹스를 하게 되고 이후 무슨 암시를 받은 것처럼 타오르게 된다. 더운 기갈, 피어 오르는 불길, 진동하는 마음에 자신을 맡겨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돌아온 루돌프 보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목격한 애덤은 자신의 인지 능력을 벗어난 충격과 식지 않은 열정 사이에서 인생을 제어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보른에게 쉽게 매혹된 스스로에게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고민 끝에 경찰에 살인을 제보하지만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애덤이 40년 뒤에 쓴 원고였다. 원고를 받은 것은 애덤의 대학 동창이며 현재는 유명한 작가가 된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깊은 교류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문학 분야에서 서로 능력을 인정하던 사이였던 것. 그래서 애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자네가 한 번 보아 주게'라고 발송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즉 작가에 의해 재창작된다. 

 

폴 오스터답게 서술은 술술 읽히고 분위기를 한껏 긴장감 있게 몰아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특히 애덤의 원고 2부에 나오는 친누나와의 성애 묘사는 압권이었다. 여태까지 본 어떤 소설의 섹스신보다 고통스러웠다. 작가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애덤은 2부를 '너' 쓴다. 종종 실험적으로 사용된 2인칭 서술인데 이보다 잘된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이미 앞서 1부를 통해 애덤은 서술 세계의 존재로 부피를 키운 상태였기에, 독자인 나는 그것을 의식하면서 자기 파괴와 연민, 비애가 뒤섞인 주인공의 자기 모순적 서술을 고통스럽게 느껴야했다멀어질 수도 없고 가까워질 수도 없는 딱 중간 지점에 묶여 버린 것이었다. 애덤은 이야기 주인공이자 서술자였고 또 소설 속 현재를 산 사람이지만 재창작한 작가는 전화 통화상으로만 대화했을 뿐이고 진짜 그를 만난 것은 과거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면? 폴 오스터의 농담이라면?  

독자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황색 눈물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은 사람을 속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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