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세트 - 전3권헝거 게임 세트 - 전3권 - 8점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북폴리오
http://gompic.tistory.com2013-02-12T06:55:070.3810

미래일까? 북미에 세워진 독재 국가 판엠은 중앙의 캐피톨이 지배 영토를 12구역으로 나누어 지배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식민 구역의 사람들은 식량과 산업 물자를 생산하여 캐피톨에 공급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또한 매년 소년소녀들을 뽑아 살인 게임에 내보내야 할 복종에 시달린다. 이것은 어린 농노들끼리 살육을 벌이도록 조장하여 각 구역에 식민 근성과 패배 의식을 주입하려는 캐피톨의 비열한 장치이다. 지배자들은 이를 헝거 게임이라 부르며 전국 텔레비전을 통해 영상을 생중계, 시청을 강제한다.  

 

미국판 배틀 로얄? 

흔히 일본의 배틀 로얄 시리즈와 비교되는 헝거 게임이지만 그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배틀 로얄이 소위 꼰대들과 신세대의 대결이었다면, 헝거 게임은 독재 세력과 해방 세력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헝거 게임이 갖고 있는 함의가 배틀 로얄에 비해 다층적이어서 (예를 들면 매스미디어에 대한 시각) 해석할 여지가 많지만 단순화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배틀 로얄에 비해 헝거 게임은 선악 구도가 훨씬 뚜렷하다.  

 

식민지 내의 무전유죄 

이야기는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사냥을 깨친 12번 구역의 소년 게일과 소녀 캣니스로부터 시작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비참한 식민지인인 두 사람은 헝거 게임에 뽑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잇고 있다. 하지만 가난할수록 헝거 게임에 뽑힐 확률이 높아지는 제도는 이들에게 큰 불안이다. 헝거 게임 추첨함에 이름을 많이 써 넣으면 그만큼 식량 배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추첨표 대부분은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라는 설정인데, 벌써 몇 년째 쓸 수 있을 만큼 써서 추첨함에 이름을 넣어 온 두사람 중에 하나는 아니 전부는 이번에야말로 추첨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불안 속에 헝거 게임에 뽑힌 것은 올해 처음으로 추첨함에 이름을 넣은 캣니스의 여동생 프림이다.이에 캣니스가 동생을 대신해 헝거 게임에 자원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려 나간다.  

 
철저하게 바쳐지는 매스컴의 제물.  

뽑힌 아이들은 조공인이라 불린다. 주인공 캣니스는 제대로 바쳐지기 위해 캐피톨에서 생존술 교육을 받고, 게임 중 필요한 아이템을 보내줄 후원자를 모으기 위해 멋진 의상을 입고 티브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한다. 여기서 작가는 캐피톨 사람들이 진정으로 헝거 게임을 즐기고 있는 장면을 심각하게 묘사한다. 방청객들의 탄성, 관중들의 환호,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이 읽는 이를 심란하게 할 정도로 그려진다캐피톨의 그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게임을 시청해야 하는 식민 구역 사람들과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이며 추악하고 우매한 대중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캣니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모든 매체에 비추어질 모습을 신중하게 골라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캣니스는 동향의 소년 피타와 비운의 연인을 연기하기도 하고 2권에서 치러지는 특별 헝거 게임에서는 임신 설정을 이용해 후원자들을 사로잡는다. 모두 캣니스가 먼저 시작한 설정은 아니지만 생존이 달린 일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다. 1,2권을 치르는 동안 어느새 혁명의 상징이 된 캣니스는 은폐되었던 13번 구역 반란군들로부터 잔다르크 연기를 강요받는다. 그녀는 거짓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된다. 혁명 세력은 자기들 편을 모으고 캐피톨 시민들을 동요시키기 위해 해적 방송을 내보낸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들로 범벅 연출한 영상을 실제 영상인 양 방영하는 짓들을 한다. 캣니스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나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상황들이다.  

 

성장통이 아니라 현실 

1권 도입부에서 캣니스는 아이를 절대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가난과 헝거 게임의 공포를 물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조차 미래에 아무 희망이 없는데 미래를 살아갈 존재를 뱃속에서 키우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어째, 상상 소설 속의 초가난 소녀의 말이 현실에서 주위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와 비슷해서 아찔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현실에는 스스로를 식민 노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점일까? 그러나 노예의 자식은 결국 노예. 아이를 낳아도 대기업과 정치인들의 노예가 되리라... 라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매우 미국적인 희망으로 마무리하는 결말이 아니라면.  

 

짠한 감성 소설 

이 소설의 서술은 매우 감성적이다. 캣니스가 화자인지라 그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1권에서는 매우 감정 이입이 잘 되어 그게 좋았다. 그러나 나는 2,3권까지 소녀의 징징을 들어줄 수는 없는 성격이다. 화자를 각 권마다 바꿨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2권은 피타, 3권은 게일이 화자였으면 이야기가 훨씬 빠르게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진행됐을 듯하다. 물론 이야기에서 캣니스가 주인공이긴 한데 주제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녀가 이야기 서술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이 똑똑한 소녀는 이런저런 입장과 설정을 강요받으며 심리적으로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 그 묘한 심리적 상처를 너무나 잘 서술해 줘서 오히려 재수없었달까? 곁에서 지켜본 사람의 이야기가 내게는 필요했다. 

 

오늘의 소감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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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2개국어 사용자의 죽음어느 완벽한 2개국어 사용자의 죽음 - 10점
토마 귄지그 지음, 윤미연 옮김/문학동네

 

"전쟁마저 협찬 받아서 하는 이 더러운 세상!" 

  

망할, 책을 펼쳤는데 글자들이 위아래 거꾸로였다. 겉표지가 잘못 끼어져 있던 탓이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용이랑 무척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책을 쌀 때 작업자가 겉표지 일러스트에 깜빡 속아 넘어간 듯하다. 그 정도로 훌륭하다고 여기서 정리. 

  

나는 잘 모르지만 나름 훌륭한 상들을 휩쓴 이 소설은 연극으로도 올려져 호평을 받는 모양이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믿는다면) 와, 어떻게 했을까? 빈민 골목에서 출발해 쇼 비즈니스 절정을 아우르는 광활한 이야기를 누가 각색했을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무튼,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서문을 보면, 토마 귄지그는 학창시절 만난 한국소녀 덕분에 작가가 됐지 하고 적어 놓았다. 소녀 때문에 작가가 된 이야기는 무수히 많으니 그렇다 치고, 저 당시 벨기에에 한국소녀라니... 입양아였을까?  

  

아무튼,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는 나오지 않는다. 뒤쪽 해설을 보면 작가가 이원화된 세계 사이에 낀 회색인간을 나타내려 했다는데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아, 지금 보니 옮긴이가 직접 쓴 글이다. 제목 '병든 세계와 짝사랑'은 채플린식 희극 같아서 마음에 든다. 

  

아무튼, 

이 소설에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지배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텅 비어 있다. 섹스, 폭력, 광고, 이윤, 시청자, 건달, 살인자, 고아, 군인 그리고 켈로그로 이어진 끈은 사실상 그 어디에서 잘라도 상관없다. 뭐, 여기에 군대가 진군하여 굶주린 전쟁 피해 아이들에게 켈로그를 주는 장면을 찍어 방송에 내보내야 전쟁 자금이 증가한다는 것도 종종 나오지만 그것은 그냥 허례허식일 뿐 사고가 정당하게 기능한다면 불가능한 이윤 창출 방법이고 마찬가지로 특별한 효과도 없다. 단지 달려야 하니까 달리고 파묻어야 하니까 땅을 판다. 그리고 마지막에 생각하는 거다. "다시 처음부터!"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영화 디스트릭트 9을 떠올린 것은 나 혼자일까? 

  

아무튼, 

이 소설에 한계는 없는 것 같다. 노골성이 내세워서 감출 것도 없는지 이야기는 쭉 쭉 뻗어 나간다. 쉼 없는 1인층 서술은 참 교양도 없어 시끄럽게 들릴 때도 많지만 이 화자가 독자를 궁금증을 유린하며 조련하는 솜씨는 매우 좋다.  

  

아무튼,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사람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병든 정도가 아니지, 이건... 

  

그러니까,

재밌고 읽고 나서 기분이 매우 씁쓸해지는 소설이다. 당신도 당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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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용자/책 2013. 2. 5. 17:23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 10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열린책들
http://gompic.tistory.com2013-02-05T08:23:320.31010


그러고 보니 다른 외국 작가에 비해 폴 오스터의 소설을 많이 본 것 같다. 이 책 이전에는 어둠 속의 남자를 읽었고 그보다 전에는 브루클린 풍자극,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등을 읽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브루클린 풍자극이었는데 황혼 이혼으로 삶이 허망해진 늙은 남자가 겪는 모험이랄지 생활이랄지 아무튼 새 삶이 무럭무럭 자라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새로 사귀게 된 여성에게 정중하게 청혼했다가 따뜻한 거절의 말을 듣는 장면이 정말 좋았다.  

 

나는 1967년 봄에 그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당시 나는 컬럼비아 대학 2년생이었고 책만 좋아할 뿐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훌륭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려 보겠다는 믿음(혹은 망상) 하나만은 굳건했다. 나는 시를 많이 읽고 있었으므로 그와 똑같은 이름을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소설 보이지 않는의 시작은 마치 많은 작가들이 한 번씩은 쓰는 자전적 성장소설 같았다. 문학소년이 방황하는 문청 시기를 거쳐 사랑하고 헤어지고 만남에서 배우는, 그런 소설. 이미 매체를 통해 그게 아님을 정보 주입 받았는데도 문학에 대해 술술 말을 풀어나가는 1인층 화자는 그런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애덤 워커가 만난  '그'다. 루돌프 보른이란 인물인데, 그와 만나 버린 이상 애덤은 어찌할 수 없었다고나 할까? 모든 것을 기획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듯한 이 의뭉스러운 남자는 절대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애덤이 바라지 않는 순간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매혹적이고 신선하다는 것이 함정. 프랑스인인 그는 미국 젋은이들이 모인 어느 파티에서 만난 애덤을 띄우며 자신의 잉여로운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살냄새를 풍기는 아름다운 마고가 있었다. 결국 애덤은 보른이 투자 얘기를 꺼내고 잠시 프랑스에 간 사이, 마고와 섹스를 하게 되고 이후 무슨 암시를 받은 것처럼 타오르게 된다. 더운 기갈, 피어 오르는 불길, 진동하는 마음에 자신을 맡겨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돌아온 루돌프 보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목격한 애덤은 자신의 인지 능력을 벗어난 충격과 식지 않은 열정 사이에서 인생을 제어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보른에게 쉽게 매혹된 스스로에게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고민 끝에 경찰에 살인을 제보하지만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애덤이 40년 뒤에 쓴 원고였다. 원고를 받은 것은 애덤의 대학 동창이며 현재는 유명한 작가가 된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깊은 교류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문학 분야에서 서로 능력을 인정하던 사이였던 것. 그래서 애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자네가 한 번 보아 주게'라고 발송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즉 작가에 의해 재창작된다. 

 

폴 오스터답게 서술은 술술 읽히고 분위기를 한껏 긴장감 있게 몰아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특히 애덤의 원고 2부에 나오는 친누나와의 성애 묘사는 압권이었다. 여태까지 본 어떤 소설의 섹스신보다 고통스러웠다. 작가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애덤은 2부를 '너' 쓴다. 종종 실험적으로 사용된 2인칭 서술인데 이보다 잘된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이미 앞서 1부를 통해 애덤은 서술 세계의 존재로 부피를 키운 상태였기에, 독자인 나는 그것을 의식하면서 자기 파괴와 연민, 비애가 뒤섞인 주인공의 자기 모순적 서술을 고통스럽게 느껴야했다멀어질 수도 없고 가까워질 수도 없는 딱 중간 지점에 묶여 버린 것이었다. 애덤은 이야기 주인공이자 서술자였고 또 소설 속 현재를 산 사람이지만 재창작한 작가는 전화 통화상으로만 대화했을 뿐이고 진짜 그를 만난 것은 과거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면? 폴 오스터의 농담이라면?  

독자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황색 눈물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은 사람을 속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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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 8점
마크 트웨인 지음, 린 살라모 외 엮음, 유슬기 옮김/막내집게

 

캘리포니아대학 뱅크로프트 도서관의 '마크 트웨인 프로젝트'의 편집자들로, 40년 가까이 마크 트웨인의 문학작품과 개인 기록들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학술서와 대중서를 펴내고 있다. 

 

마냥 마크 트웨인의 글이 읽고 싶어졌을 때 주문한 책이다. 그의 에세이겠거니 하고 샀는데 엮은이 소개와 편집자 서문을 읽고 책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다. 엮은이들은 마크 트웨인 마니아 중에 마니아, 마크 트웨인이란 인간종이 쓰거나 그에 대해 쓰여진 종이 쪼가리로 둘러싸인 좁은 사무실에서 방문하는 학자들을 환영하며 책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편집자로 이루어진 그 팀원들 대부분이 30년 이상 이 일을 했다니 그들보다 마크 트웨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서문에는 아직도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즐겁다고 적혀 있다. 우리는 아무리 좋아도 30년 이상 같은 일은 못할 것 같으니 믿어 주자.  

 

그래서 말인데, 이 책의 정체는 마크 트웨인의 생활철학을 알 수 있는 쪽글들을 광팬들이 모아 놓은 것이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부터, 여행기, 연설, 항의문, 콩트, 평론 등 여러 가지 분야의 글이 소주제별로 담겨 있다. 역시나 뻔뻔하고 투덜대는 듯한 입담 글이 많아 읽는 동안 혼자 낄낄거린 적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편집자들의 엄청난 수집력에 놀라기도 하면서. 

 

마크 트웨인은 장례식 예절에 대해 쓰다가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애견을 데리고 오지 마라" 끝맺는다거나 사과하는 입장이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너도 나한테 사과해야 한다고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한 번은 집에 도둑을 맞은 이후 다음에 찾아오는 도둑 보라며 경고문을 썼는데 고양이를 자극해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둥 하더니 문은 꼭 닫고 나가라는 걸로 결론을 내는 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진지하게, 게다가 조금 화난 것처럼 어투를 유지하는 그의 글들은 삶에 대한 태도로부터 유머가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누구나 미간을 찌푸린다고 유머가 되는 것은 아니니 참고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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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 8점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1권에서는 에셔가, 2권에서는 마그리트가 등장하였다면, 3권에서는 이제껏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건축가 겸 판화가 피라네시가 등장한다. 피라네시는 빅토르 위고, 움베르트 에코, 올더스 헉슬리보르헤스 등에 영향을 준 예술가라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미학 입문서.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아름다움과 사유, 철학과 분석이란 단어가 막연한 사람은  

쉽게 읽을 수 없다.  

워낙에 내용 자체가 본래 답이 없는 경주여서, 라고나 할까?  

에셔와 마그리트와 피라네시를 표상으로 두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인류가 무엇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시작했는지  

이후에 어떤 식으로 '미' 구성해 왔고  

지금에 이르러 관념으로 고정시켰는지  

설명하고 있다.  

 

기본 구성은 서양 학문의 영원한 테마인 절대성와 상대성의 무한 루트(또는 루프)를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빠르게 훑는 식이다. 잘 따라 읽으면, 교대로 나타나는 절-상대 화음의 변주 속에서 현대 사회의 미 인식(또는 태도, 취급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지점에 도달했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그를 위해 저자가 즐겨 쓰는 전법은 포위술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미 이론과 그에 대한 이미지를 주위에 쌓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 안에 갇힌 것처럼 자료 속에 포위된다.  

제대로 사유하며 읽었다면 책을 해독하던 정신은  

책 속에 인용된 모든 언급들 사이에  

그 사이에 놓이고 만다. 

삶이 가진 모든 것들 사이에.  

 

이쯤에는 관조가 필요해진다. 

눈에 너무 힘 쓰지 말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압축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에는 이 정보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아름다움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하나씩 해독될 가능성이 있다.  

 

뭐 미학자 되려는 거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할 말 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종 도달 지점이 관념화된 탓에 육체가 빠져 버렸다.  

생략됐다.  

자아와 세계를 연결해 주는 몸이. 

그러나 저러나 이 정도에서 끝. 

 

참, 백남준이 왜 자기 예술을 사기라고 했는지 궁금한 사람은 읽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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